2020. 9. 2. 04:43ㆍ종이비행기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 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퀘렌시아는 회복의 장소이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
본연의 자기 자신에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다.
산양이나 순록이 두려움 없이 풀을 뜯는 비밀의 장소,
독수리가 마음 놓고 둥지를 트는 거처,
곤충이 비를 피하는 나뭇잎 뒷면,
땅두더쥐가 숨는 굴이 모두 그곳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작은 영역.
명상에서는 이 퀘렌시아를 인간 내면에 있는 성소에 비유한다.
명상 역시 자기 안에서 퀘렌시아를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전에 공동체 생활을 할 때, 날마다 열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왔다.
지방에서 온 이들은 며칠씩 묵어가기도 했다.
살아온 환경과 개성이 다른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다행히 집 뒤쪽, 외부인의 출입이 차단된 작은 방이
내게 중요한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곳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 나의 퀘렌시아였다.
한두 시간 그 방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다시 만날 기운이 생겼다.
그 비밀의 방이 없었다면 심신이 고갈되고 사람들에게 치였을 것이다.
내가 만난 영적 스승들이나 명상 교사들도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수행자들을 만나지만
수시로 자신만의 장소에 머물며 새로운 기운을 얻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의 샘이 바닥난다.
내 삶에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을 피해 호흡을 고르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들로 마음이 피폐해질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여행은 나만의 퀘렌시아였다.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문제들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 자신이 되었으며,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고 나면 얼마 후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다시 삶 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퀘렌시아를 안다.
뱀과 개구리는 체온으로 동면의 시기를 정확히 알며,
제주왕나비와 두루미도 매년 이동할 때가 되면 어디로 날아가 휴식할지를 안다.
그것은 존재계가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본능적인 부름이다.
그 휴식이 없으면 생명 활동의 원천이 바닥난다.
인간 역시 언제 일을 내려놓고 쉬어야 하는지 안다.
우리가 귀를 기울이면 몸이 우리에게 말해 준다. 퀘렌시아가 필요한 순간임을.
나 자신으로 통하는 본연의 자리, 세상과 마주할 힘을 얻을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장소만이 아니다. 결 좋은 목재를 구해다 책상이나 책꽂이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번뇌가 사라지고 새 기운이 솟는다.
그 자체로 자기 정화의 시간이다.
좋아하는 공간,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시간,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 이 모두가 우리 삶에 퀘렌시아의 역할을 한다.
소음으로부터 벗어난 곳에서의 명상과 피정, 기도와 묵상의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평화로운 음악이나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밤,
내면세계의 안식처를 발견하는 그 시간들이 모두 퀘렌시아이다.
막힌 숨을 트이게 하는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생의 에너지가 메마르고 생각이 거칠어진다.
투우장의 퀘렌시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소는 어디가 자신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이며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인지를 살핀다.
그리고 그 장소를 자신의 퀘렌시아로 삼는다.
투우사는 소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그 장소를 알아내어 소가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투우를 이해하기 위해 수백 번 넘게 투우장을 드나든 헤밍웨이는 퀘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썼다.
삶은 자주 위협적이고 도전적이어서 우리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때 우리는 구석에 몰린 소처럼 두렵고 무력해진다.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영역으로 물러나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추스리고,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숨을 고르는 일은 곧 마음을 고르는 일이다.
히말라야 트레킹, 고산 부족과의 생활, 나를 가족처럼 보살펴 준 오지 마을 사람들,
갠지스 강의 작은 배 위에 누워 무념무상하게 바라보던 파란 하늘,
앞니 네 개 부러진 탁발승과 사과를 깨물어 먹을 수 있는가 시험하며 천진난만하게 웃던 일들
이런 쉼의 순간들이 없었다면 나 역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인생은 쉼표 없는 악보와 같기 때문에
연주자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쉼표를 매겨 가며 연주해야만 한다.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퀘렌시아이다.
나아가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자신이 될 수 있다면, 싸움을 멈추고 평화로움 안에 머물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곳이 퀘렌시아가 될 수 있다.
신은 본래 이 세상을 그런 장소로 창조했다.
자연스러운 나로 존재하는 곳으로,
인디언들처럼 세상과 대지와의 교감 속에서 활력을 얻고 영적으로 충만해지는 장소로.
그런 세상을 투우장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도 내게는 소중한 퀘렌시아의 시간이다.
트라피스트회 신부 토머스 머튼의 말대로
우리 안에는 새로워지려는, 다시 생기를 얻으려는 본능이 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자기 안에서 깨우려는 의지가.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아 회복의 장소를 찾고 있으며,
삶에 매몰되어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치유하고 온전해지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당신에게 퀘렌시아의 시간은 언제인가?
일요일마다 하는 산행, 바닷가에서 감상하는 일몰, 낯선 장소로의 여행, 새로운 풍경과 사람들과의 만남
혹은 음악이든 그림이든 책 한 권의 여유든
주기적으로 나를 쉬게 하고, 기쁘게 하고, 삶의 의지와 꿈을 되찾게 하는 일들 모두 퀘렌시아가 될 수 있다.
좋은 시와 글을 종이에 베껴 적거나 소리내어 읽는 것 같은 소소한 일도 그런 역할을 한다.
긴 여행이 불가능할 때 나는 이틀 정도 시간을 내어 제주도의 오름을 오르거나 사려니숲길을 걷는다.
그곳에서 흙과 햇빛과 바람, 성스러운 기운들과 일체가 된다.
그때 발걸음이 곧 날개가 된다. 자연과 연결되는 장소, 대지와 하나 되는 시간만큼 우리를 회복시켜 주는 것은 없다.
그때 우리는 인도의 오래된 경전 『아슈타바크라 기타』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삶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가라앉게 두라.
너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너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매일매일이 단조로워 주위 세계가 무채색으로 보일 때,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아 심장이 무너질 때,
혹은 정신이 고갈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렸을 때,
그때가 바로 자신의 퀘렌시아를 찾아야 할 때이다.
그곳에서 누구로부터도, 어떤 계산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
자유 영혼의 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는 길이다.
나의 퀘렌시아는 어디인가?
가장 나 자신답고 온전히 나 자신일 수 있는 곳은?
너무 멀리 가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나의 퀘렌시아를 갖는 일이 곧 나를 지키고 삶을 사랑하는 길이다.
"내가 묻고 삶이 답하다"
류시화 시인의 신작 산문집
엊그제 씨앗을 뿌린거 같은데 김장무 싹이 벌써 손가락만큼 올라왔다.
지금 솎아주는걸까? 원예소독약인지 하는 밀가루 같은 약을 휘리릭.........
믿어지지 않겠지만 장담하건데 올 김장무는 자급자족. ㅎㅎ
말이 그렇다는거지. 뭐
돌산갓에도 뿌려주는게 맞나?
공평하게 너도 휘리릭...........
당연히 김장배추도 분단장 시켜주기.........
처참한 모습의 여주..........
내년에 한번 두고보자..................죽었쓰.............
태풍이 또 올라온단다.
세상이 왜이리 시끄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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