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도 말고 지우지도 말며....
흰색을 많이 쓰는 화가가겨울 해변에 서 있다.파도가 씻어버린 화면에눈처럼 내리는 눈,어제 내린 눈을 덮어서어제와 오늘이 내일이 된다. 사랑하고 믿으면, 우리는모든 실체에서 해방된다. 실패한 짧은 혁명같이젊은이는 시간 밖으로 걸어나가고백발이 되어 돌아오는 우리들의 꿈, 움직이는 물은 쉽게 얼지 않는다. 그 추위가 키워준 내 신명의 춤사위.
활짝 핀 꽃나무 아래에서우리는 만나서 웃었다 눈이 꽃잎이었고이마가 꽃잎이었고입술이 꽃잎이었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그날 그렇게 우리는헤어졌다 돌아와 사진을 빼보니꽃잎만 찍혀 있었다
바람 부는 날이면 네가더 보고 싶었다. 바람 속에 너의향기가 있을 것 같아 바람 속에 너의목소리가 숨은 것 같아 두리번거리며두리번거리며 꽃이 피는 아침보다새가 우는 저녁보다 바람 부는 날이면 언제나네가 더욱 보고 싶었다.
돌아앉아 혼자 소리 없이 고즈넉이 어깨 들썩이지 않고 흐느껴 울고 싶은 나날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하나님한테까지 들키지 않고 그냥 흐느껴 울고만 싶은 나날 다만 세상의 한 귀퉁이 내가 좋아하는 한 사람 아직도 숨을 쉬며 살아 있음만 고맙게 여기며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고 싶다 또 11월 / 나태주